김연숙의 맑은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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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9-25 00:01:29]
Subject   몽골에서의 나흘

     미술교류 및 스케치여행이라는 명분으로 4박 5일의 여정의 몽골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떠나기 전날에야 받아 본 세쪽 분량의 몽골의 면적, 인구, 기후, 역사 등에 대한 정보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가 않았습니다. 몽골은 내게 대륙의 중심에 서 있음과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만을 보여주면 이 여행의 목적은 다 이루어 질것만 같았습니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다 버리기 위해 바다로, 섬으로 여행을 한다는데, 버릴 것 다 버리고 나서 한결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했는데, 40여년을 섬에서 지겹도록 수평선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나는 질리도록 끝이 없는 지평선을 한번 보고싶은 소망을 오래전부터 가졌드랬습니다. 여행의 일정상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로 갈수 있을 지 없을 지 모르겠지만 대륙의 한 가운데 발을 딛고 있는 것 만으로도 족할 것 같았습니다. 
    4박 5일이라고는 했지만 마지막 하루는 일어나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왔기 때문에 정확히는 4일의 일정이었는데 이틀은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나머지 이틀은 울란바토르에서 약 한시간 반 가량 떨어진 테를지라는 한적한 시골 캠프장에서 지냈습니다.

    울란바토르는 조그맣고 낮은 도시였는데 '어린이 보호차량', '00학원'같은 우리글이 선팅된 중고차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그곳의 차량의 3분의 1은 국산차인데다가 커다란 수퍼에는 우리물건들이 우리와 비슷한 가격대로 진열되어 있고, 사람들도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아서 외국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낯선 도시에나 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간간이 피시방도 보이고 배꼽티에 핸드폰을 가진 이들도 보이는 반면 공중전화박스 대신에 거리에 사람이 직접 전화기를 들고 앉아있는 모습들, 자동차중심의 보행문화, 거리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우리에게 돈을 구걸하는 모습들이 마치 우리나라의 60-70년대의 모습과 현재시점이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나서 몽골의 미협사무실을 방문하고 아래층에 있는 미협소속 갤러리로 안내되어 전시를 보게 되었는데 풍경화며 정물화, 인물화, 풍속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과 각기 개성이 달라보이는 화풍의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시가 개인전일 줄이야... 30 중반의 나이쯤으로 보이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들이라며 소개했을 때 혹시나 학생때 작품들서부터 지금까지의 작품들을 모두 모은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작업기간을 물어보았는데 모두 2년여에 걸친 작업이라니 우리는 또 한번 놀랄 수 밖에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회고전이 아닌바에는 일정기간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통일성이 있을 법 한데 인물, 정물, 풍경, 풍속, 사실묘사, 서정적 표현, 모노톤에서 야수파같은 강렬한 색상표현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작가가 전시된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일행 중 누군가가 작가의 프로의식 결여를 지적했는데 암묵적으로 동의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작가는 이 많은 작품들을 그리면서 애꿎은 머리 쥐어짜는 괴로움 없이 마음은 평안하지 않았을까하는 한조각 부러움이 스쳐지났습니다. 어쩌면 이 자체가 정착하지 않고 또다시 떠나야 하는 유목민적 특성이 드러났던 것은 아닐른지요.
     현대미술관이라는 곳에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몽골미술의 현주소를 보게 되었습니다. 몽골의 풍경, 몽골사람들을 소재로 그린 그림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한결같이 서양의 화풍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어서 몽고적인 색채와 화풍들이 아쉬웠는데요,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보편성 사이에 우리의 것을 찾아가는 일은 비단 우리미술에만이 아니라 바로 이곳 몽골의 미술가들도 한번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미술관 외에도 역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을 둘러 봤는데 유목민의 특성상 찬란하다거나 화려한 문화유산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장하는 기술이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돌맹이 하나, 나무토막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진열하고 설명하다보면 보잘 것 없어보이는 것도 대단한 것으로 바뀔 수 있는데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인지, 신경쓸 만한 여력이 없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자연사박물관 역시 디스플레이 사정은 마찬가지였으나 공룡뼈를 비롯해 몽골의 청정자연에서 사는 생물들 , 풍부한 자원들은 대단했고, 몽골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울란바토르를 떠나 테를지라는 곳에서 이틀을 묵었습니다. 그 곳은 울란바토르와 가까우면서도 풍광이 좋아서 많이들 찾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묵을 곳으로 가는 도중 커다란 캠프촌이 세워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한국사람이 만드는 것이랍니다. 불현 듯 제주의 오름턱이나 바닷가에 우후죽순으로 세워지는 팬션들을 떠올리며 이곳의 미래가 그려졌습니다. 우리가 탔던 버스는 일본에서 쓰던 중고차였는데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었습니다. 몽골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좌측통행원칙인데 우리가 찻길에서 내리려면 인도쪽에서 내리는게 아니라 차도한가운데서 내려야 했습니다. 그만큼 아직 이곳의 법, 제도는 허술하기만한데 청정자연이 자원인 이곳이 앞으로 친환경적 개발이 이루어 지길 바라는 마음은 너무 때이른 생각은 아니었던지요.
    우리가 묵은 곳은 북쪽으로는 산이 둘러있고 산 아래는 강이 흐르고 강 위의 절벽에 위치한 남쪽으로는 낮은 오름들과 들판이 펼쳐진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우리의 숙소는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호텔이었으나 몽골의 전통가옥인 겔(이동식 둥근 천막)에 나무침대가 두 개, 테이블하나, 의자 두 개, 옷걸이, 난로가 전부인 곳이었는데 밤에는 심한 일교차로 인해 난로를 지피고 꺼지면 다시 일어나 난로불을 피워야 했습니다. 어린애가 불장난하듯 난로불 지피는 재미또한 쏠쏠하더군요. 그곳 테를지에서 아침에 뜨는 해와 저녁에 올라오는 둥근달, 별들의 소리없는 움직임, 수많은 별똥별들, 자체 발전기가 꺼지고 나서의 고요함, 오름등성이로의 말타기, 파란 하늘위에 떠있는 아이콘같은 구름들, 보너스처럼 보여졌던 전통씨름과 어린이 말타기경주를 보았던 체험들은 아마도 앞으로 힘들거나 지쳐있을 때 그 약발이 꽤나 오래갈 듯 싶었습니다.

   우리가 서울로 출발하는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는데 강수량이 많지 않은 건조한 이곳에서의 비는 또한 색달라 보였습니다. 제주에서같으면 평소에 있음직한 약간의 바람이 불었을 뿐인데 공항에서는 비행기가 뜨네, 마네 약간의 소란이 있은 연후에야 비로소 서울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버리기 위해서 떠나고, 어떤 이는 얻기 위해 떠납니다. 궁극적으로는 돌아오고 나서 스스고 커졌음을 확인하고, 또 그런 이유로 또다시 여행을 떠나곤 하는 것 같습니다.

    나흘 동안의 몽골여행에서 돌아와서 잠시는 뭔가 개운하지 못함을 느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평선을 못보았던 연유인 것 같습니다. 지평선을 보고싶은 소망은 몽고에 까지 왔는데 지평선을 못보다니 하는 욕구불만으로 내 속에 또아리를 틀었던가 봅니다. 우리가 갔던 아름다운 테를지에도 넓은 평원이 있긴 했지만 어느정도 지나면 산들이 겹겹이 있어서 확 트인, 질리도록 끝이 없는 지평선은 없었기 때문이죠. 이 글이 아니었다면 몽골에서의 순박한 사람들과 청정자연과의 만남,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그냥 스쳐지나친 바람처럼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들은 여행을 다녀와서 커진다지만 이번 여행은 나의 지평선에의 집착이 드러나 오히려 나의 작음을 확인한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직은 젊다고 해야 할른지요...

(200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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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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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    남이섬 가요. 김연숙 2006/02/17
18      남이섬 사진 김연숙 2006/03/07
17        남이섬 사진2 김연숙 2006/03/07
16    섬에서 섬으로 작품나들이(남이섬전시) 김연숙 2006/02/03
15    선흘이 [1] 김연숙 2006/01/02
14    전시장에서 김연숙 2005/12/15
13    그리다 김연숙 2005/11/24
   몽골에서의 나흘 2003/09/25
11    문화가 있는 사회를 2003/02/22
10    오히려 희망을 이야기 하기 2003/02/04
9    유해한 사이트 2002/10/04
8    태극기가 아름다웠었던가 2002/08/22
7    어린이미술대회에 어린이미술은 없다. 2002/06/08
6    화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1] 2002/04/08
5    전시장을 지키며 200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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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드러운 힘 2001/10/27
2    제주판화의 새로운 희망찾기 2001/10/26
1    제주판화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며... 200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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