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이는 시댁과 친정 모두 합해 36명이나 되는 2세들 가운데 막내다.
올해 시누이의 아들이 중학교에 가서 양가의 맨 막내인 작은아이만 유일한 어린이로 남았다.
그런데 정작 어린이날에 작은아이는 감기에 걸려 도무지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작은아이를 구실로 마련된 시댁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아이는
목도 아프고 열도 있고해서 입맛이 없었는지 음식에 손을 주지 않았다.
약을 먹어야 한다며 겨우 몇숫갈을 뜨게 하고는 집에와서 약을 먹이고 쉬게 했다.
한참을 누워 있더니 내게로 와서는
"목 안아프게 하는 약 없어요?"하고 물었다.
목이 많이 아픈가 보았다. 하지만 이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없어! (아까 약을 먹었으므로)그냥 좀 참고 견뎌야 해! 참고 견디는 것도 약하고 같애.
참고 견디는 것도 공부야 (이 시점에서 왜 공부란 말이 나왔는지)"
감기라는 게 병원에 가면 7일, 병원에 안 가면 일주일이 가야 낫는다지 않는가.
약도 약이지만 강인하게 견뎌내는 것도 필요하다싶어 한 말인데
'목이 많이 아프구나, 많이 힘들지?'라는 공감의 말은 나중에야 생각났다.
그 말을 먼저 했어야 했는데.. 게다가 어린이날인데...
며칠전 큰아이가 중간고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도
현관으로 갈 때까지는 '애썼다. 힘들었지?'라고 얘기하려 했는데
문을 열면서는 아이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는 새에 "시험 어땠어?"라고 나와버렸다.
아차 싶었는데 이미 큰애는 입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근래들어 큰애가 고등학생이 되니 어른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애를 대하는 내 태도에 변화를 줘야겠다던 참이었는데
얼마전에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부모교육에 대한 얘기를 들은 다음부터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내가 어떻게 하는가를 되돌아 보곤 한다.
언제 어디서든 애들은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상처받고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잘 하고(혹은 잘못하지 않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뭐 때론 상처받기도 하면서 크는거 아냐?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주변 친구들 애 크는 거 보자니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았다.
조그만 상처라도 제 때 아물게 못하면 스스로 상처를 키워 아이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눈을 왜곡시켜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얘기해야 겠구나 생각은 하지만
그게 마음 속에 진득이 자리를 잡고 있어 습관화 되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만 맴도니 자꾸 잊어버리기 일쑤다.
오늘은 어린이날.
어린이들을 위한 날이라 오늘 하루 어린이들이 원하는 대로 (대체로는 어른들이 해 주고싶은 대로 하지만) 해 주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지만 어린이들을 위하는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해 보는 날이면 어떨까,
정기적으로 예비군교육, 민방위교육하는 것처럼 어린이날을 부모교육 하는 날로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에게 자아존중감을 갖게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게하려면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젠가는 아하- 하며 얼마간 실천에 옮겼다가도 자꾸 자꾸 잊어버리는 부모들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약발을 받게....
(200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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