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지아 오키프는
그녀의 그림보다 남편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작품 속 모델로서 먼저 명성을 얻은,
그녀의 그림들 또한 뭐 그리 대단치도 않은 것이 조그만 꽃들을 단지 크게 그렸다는 이유로,
혹은 확대된 꽃그림에서 여성의 은밀한 부분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끈,
작품성 보다는 남편의 후광덕에 빛을 보았고, 후에 그녀의 꽃그림에 드러난 상징성들이
여성의 자의식의 표현이라고 확대해석하는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다시 한 번 유명세를 탄 작가라는 것 등이
내가 가지고 있던 그녀에 대한 짧은 정보이자 그 정보를 근거로 가졌던 그녀에 대한 편견이었다.
그녀에 대한 내 편견은 이렇듯 부정적인 측면으로 굳어져 있었는데
이런 내 태도가 여성으로서 내가 얼마나 남성적인 조형어법에 길들여졌는지,
여성작가의 작품을 폄하해 왔는지를 깨닫게 된 것은 내가 꽃그림을 그리려고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다시한번 오키프의 작품들을 자세히 보면서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여성의 은밀한 곳을 연상시키는 꽃그림이나
말년에 뉴멕시코에서 작업했던 소뼈그림이 주로 소개되는데
이를 두고 금기시 되는 여성성을 과감히 드러내 자의식을 표현했다거나,
남성성에 대한 도전의식이 엿보인다는 식의 페미니즘적 해석이 따르곤 한다.
그런 해석들에 대해 정작 그녀 자신은 부인을 했는데도 말이다.
내가 그녀의 그림을 다시 찬찬히 보았을 때
일반적인 꽃그림들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이나 생명력 보다는
관능미가 먼저 다가왔는데 이는 예전에는 못 느끼던 것이었다.
아마도 못 느꼈다기 보다는 앞서말했던 내 편견으로 인해 관심있게 보지 않았고,
솔직히는 뭐 이런 그림이 명화의 대열에 끼어있나 하는 생각으로
작품보다는 그녀의 외모에서 보여지는 이미지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쉽게 판단해 버리고는 지나쳐 버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런데 그녀의 그림들은 보면 볼수록 은근하게 사로잡는 매력으로 다가와
급기야는 그 그림들을 흉내내 보기로 했지만 그게 그리 쉽지가 않았다.
오키프의 다양한 꽃그림들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남성적 조형어법에 길들여진 사람들로서는 감히 그림 수 없는
지극히 여성적인 그림이다.
이는 또한 여성이든 남성이든 여성적 감수성을 지닌 이들이라야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일 것이다.
이런 그녀의 그림들은 그녀자신의 내적 감수성에서 비롯된 표현일 뿐 페미니스트들의 해석이
억지 끼어맞춤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기야 미술의 역사라는게 미술사가들이나 평론가들이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들에 의해 분류되고 규정지어지는게 어디 오키프만의 일일까마는.
어쩌면 그러한 해석들에 대해 오키프 자신도 부인했던 것은
‘나는 나’일 뿐, 페미니즘 작가 혹은 어떤 한 부류의 작가로 분류된다는 게
얼마나 자신의 작품을 협소하게 왜곡해 버리는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2006.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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