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스타일 열풍이 건낸 질문
김연숙 (화가)
얼마 전, 자매들과 함께 쓰는 SNS 단체방에 그림 한 장이 올라왔다. 언니가 여행을 다녀온 후 형부와 나란히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 같았다. "꽤 잘 그렸네" 싶던 찰나, 곧이어 또 다른 그림이 설명 글과 함께 도착했다. 먼저 보낸 것은 '고흐 스타일', 이건 '피카소 스타일'. 설명을 읽고 보니,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든 결과물이었다. 이를 본 다른 언니가 손주의 사진을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처럼 변환한 이미지를 공유했고, 그걸 본 다른 자매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가족사진을 에니메이션 스타일로 바꾼 것을 올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만난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며칠 뒤, AI 이미지 열풍 현상은 TV 뉴스에까지 오르내렸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가 설립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름을 딴 ‘지브리 스타일’은 전 세계에서 검색어 1위를 차지할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미지 생성 플랫폼에는 동시 접속자가 몰려 서버가 과부하되기도 했고, 그와 함께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AI 학습물의 원작에 대한 법적 문제도 거론되었다.
AI가 학습한 수많은 이미지들 중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그림체가 예뻐서만은 아니다. 그 속에는 따뜻함, 자연에 대한 경외, 인간에 대한 연민을 생각하는 창작자의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타일이 아니라 정서의 깊이가 핵심이다. 그러나 고유한 예술 세계를 AI에게 학습시킨 후 단순한 ‘스타일’의 이미지가 붕어빵 나오듯 쏟아져 나오는 AI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는 그 감성의 껍데기만을 쓴 채 너나없이 놀이처럼 소비되고 있다. 작금의 현상을 바라보는 창작자의 입장은 어떨까? 원작자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과거 인터뷰에서 AI가 만든 움직임을 보며 "생명에 대한 모욕"이라 말한 적이 있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힘든 여정인데 이런 결과물을 학습하고 모방한 것이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것을 보면 창작자로서 모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창작이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감정의 교류이자 고통과 탐색의 여정’이라는 그의 말은, AI 시대가 도래한 요즘 더욱더 유효한 울림을 준다.
AI 기술은 날로 정교해지면서 이미지뿐 아니라 소설, 음악, 영화 시나리오까지도 생성해 내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AI가 예술을 할 수 있는가에 많은 질문을 해 왔는데 이제 우리는 그 질문을 달리 해야 할 듯싶다. AI가 만든 이미지에서 우리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가?라고. 그런 가운데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의 유행은 단순한 SNS 트렌드를 넘어, AI시대에 우리가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술이 만들어가는 예술에서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AI가 만든 이미지에서 내용은 사라지고 스타일만 소비하는 것은 아닌가?, 기술이 만든 새로움에 감탄하며, 그 뒤의 창작 윤리는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가?, 더 나아가 창작의 미래는 이 흐름 속에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고. 우리는 여전히 진심이 들어있는 것에 감동하며, 누군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작품에 더 오래 머문다. 이제 지브리 스타일 열풍이 우리에게 건넨 질문에 우리가 답을 찾아가야 할 때다.
2025. 5. 1. 제민일보 <제민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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