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숙의 맑은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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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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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숙 [2009-01-13 06:04:03]
Homepage   http://www.kysart.com
File #1    바닷가의_수도승.jpg (198.3 KB)   Download : 620
File #2    아침해를_맞이하는_여인.jpg (89.6 KB)   Download : 617
Subject   영혼의 공황시대에...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각각의 그림을 클릭하면 좀 더 크게 볼 수 있다.



화면의 1/5가량이나 차지하고 있는 하늘, 땅과 하늘 사이의 시커먼 바다, 파란 하늘을 반쯤은 가리고 있는
구름쪽을 향해 하나의 점과 같은 인물이 그려진 그림을 컴퓨터모니터로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턱을 괸 듯한 수도사가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단순한 구도에 텅 빈 듯한 그림이 오히려 내 마음 속을 꽉 채웠던 것이다.
동양의 관념산수를 연상시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아득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바닷가의 수도사’란 이 그림이 200여년 전 독일에서 그려졌다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그림의 작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그가 활동했던 19세기 초부터  20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낭만주의의 쇠락과 함께 잊혀졌다가 히틀러에 의해 다시 부각되었고, 히틀러가 좋아했다는 이유로
매장되기도 했는데,  1970년 이후 다시 재조명 되어 지금은 ‘북유럽 낭만주의의 거장’이란 수식가 붙으면서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대학생 시절엔가 ‘얼음바다’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그 그림이
7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모노톤의 풍경들과 유사해서 내게는 별 의미를 두지 못했었고,
그 후 ‘겨울풍경’이란 작품을 보면서는 풍경 속의 난데없는 십자가가 생뚱맞다는 생각과 함께
너무도 작게 표현된 인물과 눈밭에 내동댕이쳐진 목발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었다.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란 작품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광주비엔날레에서 요셉 보이스가
그 그림을 차용해 사진으로 자신의 뒷모습을 작품화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모두 오래전 일 들이고 당시에는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낭만주의의 이념이나 표현방식같은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때여서 작가의 이름조차 기억에 없었다.

‘바닷가의 수도사’을 본 이후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란 이름을 검색해보니 내가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았던
일련의 그림들이 모두 한 작가의 작품이었다는 게 놀라웠다. 연결이 안될 것 같은 각각의 그림에서 오는
황량함, 아득함, 쓸쓸함, 고독, 죽음, 빛 같은 키워드를 가지고 그의 그림들에 다가섰을 때 하나로 꿰어올려 지는 것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것에 대한 숭고미다.

‘바닷가의 수도사’는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와 마크 로드코의 색면추상 작품들과 함께
내 4회 개인전이었던 <고요히 머물다>의 모티브가 된 작품들이기도 하다.
그 즈음 전인권이 부른 ‘봉우리’란 노래에 꽂혀 눈물까지 흘린 적이 있는데, 노랫말 속의 봉우리, 바다와 같은
단어가 프리드리히의 작품들과 버무려지면서 전인권의 목소리를 타고 내 영혼을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현대’라는 것을 쫓느라, 시간에 묻혀 사느라 나 자신에 대한 돌아보기가 없었다는 자기반성이었으리라.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내용의 핵심은 인간내면의 탐구다.
서양미술사에서 낭만주의의 대표선수인 들라크르와가  ‘그림은 눈을 위함이 아니라 마음을 위해 창작하는 것’이라 했듯,
낭만주의 그림들은 눈을 통해 우리의 마음 속으로 파고든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이 1970년대에 들어서 재조명된 이후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도
날로 팍팍해져 가는 시대의 흐름속에서 잠시 멈추어 선 채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하는 갈망 때문일 거다.  
그의 작품 속의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면서 말이다.

아래의 그림은 ‘아침해를 맞이하는 여인’인데, 프리드리히의 작품들 중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게 아니라서
얼마전에야  <그림정독>이란 책을 통해 눈에 띄게 되었다.
그림 속 시간이 아침인가 저녁인가는 보는 이에 따라 달라서 제목도 ‘아침해를 맞이하는 여인’이라고도 하고
‘지는 해를 바라보는 여인’이라고도 한단다.
여인의 주변은 황량하고 길은 바로 앞에서 끊겨져 있는게 요즘 우리 사는 세상을 연상시킨다.
전쟁, 환경오염, 경제위기 등 오늘날의 위기상황들은 영혼의 공황에 기인한다는 말에 동의하면서,
프리드리히의 작품 속 인물들처럼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 사는 세상을 관조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그리고, 프리드리히가 저 높고 아득한 곳에 남겨 둔 푸른 하늘과 아침 햇빛의 희망을
지금 여기로 불러들이기 위한 고민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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