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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가 아니네‘, ’왜 판화를 안하느냐‘, ’왜 회화로 했는데?‘....
이번 전시의 팜플렛을 본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의미로 물어왔던 질문들이다.
그 질문 속에는 ‘너는 판화하는 사람’이라는 나의 이미지가 붙어 있는 듯하다.
하기야 지금까지 십년을 넘게 했던 게 판화작업이고보면 당연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십년이란 세월은 이처럼 사람의 이미지가 고착되는 시간인것도 같다.
판화작업은 어떤 판종이건 간에 그림이 되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필요로 한다.
그 과정이 있기에 하나의 작품이 찍혀나올 때의 희열이나 혹 잘 나오지 않더라도 완결감 같은게 있다.
또 판을 찍은 후 수정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다.
이전에 찍었던 것들과 비교를 해 보면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감을 잡게도 한다.
또한 내게 남겨둘 한 장을 챙기고 나머지는 나눌 수 있는 맛도 있다.
판화의 매력을 열거하려면 앞으로도 긴데 내가 왜 판화를 그만두겠는가.
다만 판화작업을 하면서 표현의 한계에 부딛쳤을 때 얼른 회화를 떠올리곤 했다.
프레스기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크기의 문제,
내 느낌, 감성들이 판을 통해 그림으로 전달되는 데 대한 김빠짐,
게다가 나이먹으면서 힘이 딸리기 시작하니까 효율성에 대한 생각도 한몫했다.
판화로서 더 효과적인 작품이 있고 직접 그림으로서 표현되어야만 좋은 것들이 있듯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판화로 할 것인가 회화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면 될 것 같다.
이번의 회화작업은 우선 나와 그림에 대한 해후이다.
그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들이 조금씩 쌓여갔던게 이제 비로소 그리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욕심도 없다.
그려서 행복했기에 나머지 조형적 문제나 내용적 요소들에 대한 아쉬움은 잠시 접어둔다.
그림에 있어서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마치 첫 개인전을 하는 것처럼.
(20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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